이용우 칼럼
고사위기 한인사회
나는 아침마다 주류신문을 보면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때가 많다. 경제관련 정부의 통계발표를 접할 때다. 캐나다의 주택 경기가 여전히 활황이어서 콘도와 집값이 계속 상승하고 거래도 활발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발표는 내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한인부동산중개인들의 반응과는 정반대 현상이니 이상하지 않은가. 한인중개인들은 한결같이 주택경기가 소강상태라 고전하고 있다며 힘들다고 하는데 통계수치는 계속 건실하다고만 나오니 어느 쪽이 맞는 것인지.
지난주 잇달아 발표된 주택관련 통계만 해도 그렇다. 캐나다 전역의 주택경기는 여전히 강세로, 광역토론토(GTA)의 경우 올 9월 중순 현재 기존주택 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9%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콘도 거래량은 GTA 전체 36%, 토론토 42.6%나 증가했으며, 평균 매매가격은 전년 대비 2.4% 증가했다. 다른 비슷한 통계들도 모두 캐나다의 주택경기는 여전히 건실하다는 기사들 뿐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몇몇 한인중개인들에게 정말 그러냐고 물으니 모두들 한결같이 머리를 흔들었다. 한마디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정부의 통계수치가 엉터리든지, 아니면 한인 업계에 무슨 문제가 있든지. 원인은 후자에 있다고 본다.
정부에서는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데 왜 한인업계는 죽을 상인가. 그것은 한인사회 시장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좁은 커뮤니티 안에서 서로 생존하려다 보니 제살 깎아먹기식의 과당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어디 부동산업계 뿐인가. 식당, 이민.유학, 여행사, 소규모 자영업 등 주로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는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금 캐나다한인사회의 가장 큰 고민은 동족 이민자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2000년 초만 해도 한해 최고 1만여 명씩 들어오던 한인이민자가 4~5년 전부터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인이민자가 연간 2천~3천여 명씩 들어오는 것으로 발표되지만, 이중 태반은 현지 유학생 신분으로 있던 사람들이고 실제 순수 이민자는 몇백 명에 불과하다. 유학생으로 있던 사람들은 대체로 ‘현지화’ 돼있어 한인경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여기에다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역이민자’는 오히려 늘고 있어 캐나다의 한인인구는 제자리 걸음 내지는 되레 줄어들고 있다.
한인이민자가 감소하는 것은 모국이 살기 좋아져 이민의 요인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캐나다정부의 이민정책이 한국인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다. 현 보수당 정부의 이민정책은 ‘영어를 잘하는 젊은이’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비영어권인 한국인은 캐나다로 이민 오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인도나 필리핀 출신의 경우 영어발음은 엉성해도 어쨌든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새 이민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일단 민족 커뮤니티 규모가 커야 주류사회에서도 무시를 못할 뿐 아니라 자체 경제도 돌아가는 법이다. 중국과 인도 등은 커뮤니티가 워낙 크기 때문에 자기네끼리도 경제활동이 이뤄진다. 부동산업계의 경우 중국계와 인도계 중개인들 간판사진이 토론토 거리를 장악해가고 있다. 한인사회는 좁은 시장에 갇혀 동족들끼리 아옹다옹 다툴 뿐 뻗어나갈 여지가 없다.
지금 캐나다한인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한인 이민문호가 대폭 확대돼 신규 이민자가 늘어나든지, 아니면 주류사회나 타민족 커뮤니티로 진출하든지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중에도 이민 문호 확대는 매우 절실한 현안이다. 그런데 이런 역할에 앞장서야 할 주재 공관은 오불관언(吾不關焉), 나 몰라라 식이다.
오타와대사관의 경우, 최근 캐나다 동부지역 ‘캐라반’ 행사를 가졌던 조희용 대사에 대한 동정 기사를 연일 쏟아냈다. 한국-캐나다 수교 50주년을 맞아 대사가 지난 12일부터 일주일간 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 PEI 등 캐나다 동부 3개 주를 공식 방문해 활동했다는 보도자료가 수십 장의 사진과 함께 교민언론사에 배포됐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대체로 한결같다. ‘현지 주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양국 및 주 간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상호 협력관계를 더욱 긴밀히 했다’는 것. 또한 현지 한국전참전용사 위로 및 격려 행사, 교민 간담회, 언론 인터뷰 등 모두가 비슷하다.
그러나 보도자료 어느 구석에도 한국인의 캐나다이민 활성화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가 없다. 진지한 고민의 흔적도 없다. 조 대사가 현지 주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논의했다는 ‘한-캐 양국간 주요 현안’이란 무엇일까. 양국 및 주 간 긴밀한 우호협력 증진 방안을 놓고 무슨 말을 했을까. 한인커뮤니티 축소 따위는 대사의 관심 밖인가.
그런가 하면, 대사관은 최근 오타와의 어느 언론매체에서 조희용 대사를 캐나다의 주요 리더 가운데 10위로 선정했다는 소식과 함께, 그 배경까지 장황하게 설명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이런 자료를 접할 때마다 참 입맛이 쓰다. 조 대사는 지난해 8월 부임한 이래 단 한차례 잠깐 토론토를 다녀갔다. 당시 그는 총영사관 방문 후 한인단체 대표란 사람들을 4~5명 모아놓고 동포간담회란 것을 가진 후 사라졌으며 그후로는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 캐나다 최대 한인밀집지역인 토론토를 이처럼 외면하면서 무슨 동포사회 여론을 파악한다고 할 수 있을까.
고사(枯死) 위기에 처한 한인커뮤니티를 살리려면 우선 주재 공관부터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민정책은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대사관, 총영사관 등 주재 공관과 한인동포단체들이 다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한인인구 감소 대책이야말로 캐나다 현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생존이 걸려 있는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