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칼럼
'별'을 달다
한국의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군 고위 장성급 인사를 보면 가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38년 전, 고교 졸업 후 입교해 1년간 다녔던 사관학교. 그곳을 중도에 하차하지 않고 끝까지 마쳤더라면 지금 쯤은 어떻게 됐을까. 과연 별이라도 달았을까, 아니면 영관급 장교로 끝났을까. 그도 아니면 불운의 사고라도 당해 도중에 군복을 벗었을까…
청소년기를 막 벗어났을 무렵에 경험했던 그 1년간의 사관학교 기억은 지금도 자주 꿈에 나타난다. (1학년 밖에 다니지 않았음에도 육사 토론토 동문회에서는 나를 동창생 대열에 끼워주고 있으며, 그래서 그 기억이 더 오래 가는 지도 모른다). 그 당시 힘든 1학년 시절을 같은 방에서 함께 지냈던 동기생이 지금 군의 고위 장성으로 재직하고 있다. 지방의 명문고교를 (재수 끝에) 수석으로 입학했던 그는 사관학교도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고, 입학 후에도 역시 공부를 아주 잘하고 내무생활도 모범적이었다.
같은 고향 출신인 내가 사관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모습에 그 친구는 내 어깨를 토닥여주며 “우리 조금만 참자. 2학년이 되면 좀 낫겠지”라고 달래주던 모습이 아련하다. 그러나 나는 끝내 1년 만에 사관학교를 뛰쳐 나왔고, 그 친구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다. 군에서도 그는 동기생 가운데 선두주자로 꼽히며 일찌감치 별을 달았다. 그 친구는 2년 전 군 고위 장성 인사에서 요직에 임명됐고 나는 언론에 난 그의 사진을 보면서 참 반가웠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정부의 첫 군 수뇌부 인사를 보고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군의 최고 자리인 4성 장군(대장)에 그 친구가 아닌 다른 동기생 2명이 승진한 것이었다. 물론 대장에 오른 그들도 출중한 능력이 있으니 그랬겠지만 일반적인 예상은 그 친구가 먼저 대장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이래서 인생은 알 수 없는가 보다. 군 장성이나 정부 고위직 임명 때는 본인의 능력 외에도 출신지역 등이 안배되기 때문에 관운도 따라야 하는 것이다.
나는 육사를 도중에 하차한 후 고교동창들보다 2년 늦게 일반대학에 들어갔으며 졸업 후엔 해병대 장교로 입대하게 됐다. 그래도 한때는 장차 장군이 되겠다는 높은 야망을 품었던 내가 사병으로 입대하긴 싫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의무복무로 입대한 해병대에서는 장군의 부관으로 발탁돼(?) 스타를 모시게 됐으니 운명이란 참 묘한 것이다. 나는 비록 별을 달지 못했으나 곁에서 장군을 모시면서 그 세계를 간접 체험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직업군인 중에서도 장교들의 꿈은 ‘별’을 다는 것이다. 그러나 별을 다는 길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육사의 한 기수는 250명 내외인데 그 중 장군이 되는 것은 35명 정도다. 이중에서도 1차로 진급하는 것은 불과 30%(10명) 정도고, 나머지는 수년간 반복되는 (피 말리는) 진급심사를 통해 겨우 진급한다.
군의 최고위직인 대장으로 진급하는 장교는 육사의 한 기수에서 2명 이상 나오기가 어렵다. 해군과 공군, 해병대는 육군에 비해 장성 수가 훨씬 적기 때문에 해사나 공사 출신이 장성이 되는 길은 더 험난하다. 당연히 운도 따라야 한다. 자기의 능력이 아무리 특출나도 병영에서 부하직원이 사고라도 치면 장성 진급의 꿈은 접어야 한다.
5•16 때만 해도 군 장성은 ‘각하’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위와 명예를 누렸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장성으로 진급하면 대령 때와 비교해 대략 40여 가지의 처우가 달라진다. 먼저 대통령으로부터 호국-통일-번영을 상징하는 삼정도(三精刀)와 지휘봉을 하사받는다. 참모는 물론, 부관이나 비서실장을 둘 수 있고, 집무실에는 당번병, 공관에는 공관병(식사 담당)과 운전병을 두게 된다. 활동비 등 각종 수당과 승용차, 개인 권총이 지급되며, 근무하는 부대엔 장성기(旗)가 게양되고 집무실 출입구에는 별판(星板)이 부착된다. 의장행사에서는 ‘장성 행진곡’과 예포가 발사된다. 사후엔 국립묘지 장성묘역에 안장된다. 이러니 별을 따고 싶지 않겠는가.
2년여 전, 한때 장군들의 승용차 별판이 너무 권위적이라는 여론에 따라 이를 없애자는 제안이 있었으나 ‘공식적인 활동’에 한해 달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그것은 예비역 장성들이 “성판은 국민들이 장군들에게 보내는 무한 신뢰를 상징하는 것”이라며 별판을 계속 달 것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기업체에서도 임원(이사급)이 되면 ‘별을 단다’고 한다. 한국의 최고재벌 삼성그룹의 임원은 전체 직원의 1% 안팎인 1,700여 명 정도. 통상 100명이 입사하면 1명 정도만 임원이 되는 셈이다. 삼성의 임원이 되는 것은 군대에서 '별'을 다는 것과 같다. 억대 연봉에 각종 성과급, 고급승용차와 운전기사, 해외 출장시 항공기 비즈니스석과 특급호텔 이용, 골프 회원권, 최고급 코스의 건강검진권… 그러나 그만큼 책임도 무겁다. 업무성과에 따라 언제 퇴출될지 모르기 때문에 '임시직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한 조직에서 ‘별’을 단다는 것은 인생에서 일단 성공했다는 의미다. 그 이면엔 피나는 노력이 따랐을 것이다. 무한경쟁을 뚫고 숱한 고난과 역경을 극복했기에 그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별’이 되기를 꿈꿀 것이다. 그 꿈을 이루려면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